잠든 숲의 초인종
- 김무화과
- 5일 전
- 1분 분량

옛날 옛적, 머리 위에 작은 숲을 키우는 한 키퍼가 있었습니다.
그 숲의 나무들은 일정한 리듬으로 살았어요.
어떤 날은 쉬고(휴지기), 어떤 날은 자라고(성장기).
그런데 어느 해부터 숲이 이상해졌습니다.
나무들이 쉬는 시간을 끝낼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예요.
마치 “나는 더는 자라지 않겠다”는 듯,
숲 전체가 휴지기 고착(Telogen Arrest)이라는 긴 잠에 빠져버렸죠.
키퍼는 당황해서 잎사귀를 더 반짝이게 닦고,
비싼 기름을 바르고, 표면을 코팅했습니다.
하지만 숲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.
그때 숲 가장자리, 오래된 우물 옆에서
작은 신호 요정이 나타났습니다.
“키퍼여… 숲은 잎사귀의 광택으로 깨어나지 않아.
숲이 깨어나는 건 ‘켜짐 신호’가 울릴 때야.”
키퍼가 물었습니다.
“켜짐 신호… 그게 무엇이지?”
요정이 작은 종을 보여주며 말했어요.
“이 종의 이름은 Wnt.
이 종이 숲의 문 앞에서 울리면, 문지기가 잠에서 깨어나지.”
키퍼가 조심스럽게 종을 울리자—
숲의 문에 달린 수용체가 진동했고,
문 안쪽에서 늘 종을 꺼버리던 거대한 장치가 느슨해졌습니다.
그 장치는 원래 이런 역할을 했어요.
“숲을 깨우는 전령(β-catenin)이 들어오면
바로 분해해서 없애버려라.”
하지만 Wnt 종이 울리자
그 분해 장치가 풀리기 시작했고,
전령 β-catenin이 살아남아
점점 안쪽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.
그리고 마침내—
β-catenin은 숲의 성벽을 넘어 핵(세포핵)으로 들어갔고,
그곳에서 오래된 서기관 TCF/LEF를 만나
한 권의 문서를 펼쳤습니다.
문서의 제목은 이랬습니다.
“자라라. 만들어라. 다시 시작하라.”
그 순간, 잠든 숲은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
성장기(Anagen)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.
다만 요정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경고했어요.
“키퍼여, 종이 울렸다고
숲이 즉시 울창해지는 건 아니야.
신호의 강도와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,
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시간차가 있어.
하지만 중요한 건 하나야—
문이 열렸다는 사실.”
키퍼는 더 이상 잎사귀를 억지로 닦지 않았습니다.
대신 매일 숲의 문 앞에서
조용히 종을 울렸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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